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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 135>

 
줄거리
 

대야성 외경

 

씬 동 성 장대

 

        견훤이 그곳에서 금강을 데리고 여전히 갑옷 차림으로 먼 성밖을 보고 있다. 그는 아직도 감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시야로 보이는 성문 쪽에는 군사들과 부장들이 쉼 없이 오고가고 지나치는 대열들이 보인다.

 

견훤    보아라! 금강아. 이 성이 얼마나 대단하냐. 이 대야성은 오래 전부터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였다. 때로는 신라가 빼앗기도 하였고 또 때로는 우리 백제가 빼앗기도 하였었지. 너는 우리의 역사를 아느냐?

금강    잘 모르옵니다 아바마마.

견훤    한 나라를 운영하자면 그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지

막  황제가 어느 분이셨는지 아느냐?

금강    그 이야기는 들었사옵니다. 의자왕이셨다 하옵니다.

견훤    그렇지. 지금 이 시대를 사람들이 후 삼국이라고 한다 만은 우리 이

전의 백제는 그 마지막 황제가 의자왕이셨다. 너는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금강    참으로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술과 향락에 빠져서 나라를 망친 군

주라고 알고 있사옵니다.   

견훤    이런. 쯧쯧쯧... 바로 그것이다. 역사란, 바로 그런 것이야. 잘못되거

나 약하거나 그래서 주저앉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형편없이 평가하

기 마련이지. 아주 엉망으로 말이다. 심하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거나 폭군 혹은 살인마로 표현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역사는 대부분

정직하지 못하지. 오로지 승리자만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들

마음대로 말이다. 알겠느냐?

금강    예, 아바마마.

견훤    의자왕께서는 참으로 현군이셨다. 그러나 이미 그분 시대에는 모든

나라 살림이 어렵게 되어 있었지. 이 대야성을 신라로부터 빼앗아

신라를 놀라고 서늘하게 했던 분도 바로 그 분이시다. 그러나 결국

그분은 실패하셨다. 백성들이 단결하지 못하고 신료들이 단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나라는 망했다. 서른 한 분의 황제와

678년의 역사가 무너진 것이다.

금강    너무도 아쉽사옵니다, 아바마마.

견훤    그 뿐이 아니다. 망국의 임금은 너무도 불쌍하셨다. 당나라의 소정

방과 신라의 김인문이 이끄는 13만 연합군은 우리 백제를 무너뜨리

고 폐허로 만들면서 의자왕 그 분을 당나라로 끌고 가셨다.(사이,

목이 멘다) 포로로 끌려 가셨단 말이다. 왕께서는 무릎을 꿇고 저

당나라 오랑캐와 신라 놈들에게 술을 따라 올리시고 온갖 수모를

다 당하셨다. 나는 기억한단다. 그 때 끌려간 기록을 말이다.

금강    ........

견훤    의자왕 임금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태자들과 아흔 세 사람의 신료들

과 무려 일만 이천 이백 칠십 명의 백성들이 당나라로 끌려가 저들

의 노예가 되거나 길거리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다. 너도 이 일을 잊

어서는 아니된다.

금강    예, 아바마마.

견훤    부끄러움을 빨리 잊는 자들은 결코 큰 일을 이룰 수 없다.

금강    예, 아바마마.    

견훤    지금 이 삼한의 전국시대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승리하는 자가 자신

의 편에서 모든 역사를 꾸미기 마련이다. 우리 백제가 삼한을 통일

하면 지금의 고려와 신라는 형편없는 나라와 사람들로 평가되어 씌

여지는 것이지. 또한 반대로 우리 백제가 저들에게 진다면 우리의

기록 또한 비루하게 씌어질 것이다. 이 말뜻을 알겠느냐?

금강    예, 아바마마. 최후의 승리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되어야 하

는 것으로 아옵니다.

견훤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최후의 승리자, 마지막 승리자가 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통치자가 되어야 하고 강한 백

성들이 되어야 만이 삼한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알겠느냐?

금강    예, 아바마마.

견훤    이제 이 대야성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 신라로 가는 제일 큰 관문을

연 것이다. 하하하하.. 신라는 이제 우리의 것이 된다. 머지 않아 그

렇게 될 것이야.

 

        그렇게 견훤은 고개를 끄덕인다. 저만큼 최승우가 오고있다. 가볍게

예를 올리고 다가와 말한다.

 

최승우  여기에 계셨사옵니다. 폐하.

견훤    어서 오게, 파진찬. 내 금강이에게 이 대야성의 내력과 지난 날 백

제의 역사를 좀 말해주는 참 이였어.

최승우  허허허..그렇사옵니까?

견훤    그래 무슨 일인가?

최승우  지금 각 방면군의 총사들로부터 속속 장계가 도착하고 있사옵니다.

견훤    오 그래? 들 어떻다고 하던가?  

최승우  이미 우리 철기군이 구사(초계)를 지나 진례군성(금산군)을 함락 시

켰다 하옵니다.

견훤    오 그랬어? 벌써 거기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하하하하.. 과연 대 백

제의 철기군 들일세. 신라의 군사들은 다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구

만. 아니 그런가 파진찬?

최승우  그러게 말이옵니다. 폐하. 하오나 더 이상의 진격은 곤란할 것 같사

옵니다.

견훤    어째서? 고려군이라도 가까이 왔단 말인가?

최승우  바로 그렇사옵니다. 폐하. 고려군이 이미 빠르게 거슬러 내려와 근

방에 이르르고 있다 하옵니다. 자그만치 고려군도 일만이 넘는다 하

옵니다.

견훤    하하하..그래? 그렇다면 우리도 더 이상 내려갈 수는 없지. 저들이

들어오면 막을 군사가 없지 않은가 말이야.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만 우리도 고려군을 대치해야하옵니다.

견훤    그렇게 하게. 남하중인 모든 군을 그쯤에서 정지시키고 수비군사만

남기고 모두 다시 고려군을 대할 준비를 하라 전하게.

최승우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견훤    자, 가자. 금강아. 늘어날 우리의 영토를 설명하여 주겠다. 하하하하.

가자, 가자! 고려군이 온다니 우리도 대비를 하여야지.

 

        견훤은 그렇게 금강을 데리고 간다. 그들의 모습을 보는 최승우는

흐뭇하다. 그 표정에서

 

씬 길

 

        배현경과 윤신달, 전의갑 형제가 가고있다. 수많은 군사들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있다.

 

배현경  이보시오, 윤장군. 이제 곳 대야성과 접경지역이 올시다.

윤신달  그런 것 같습니다. 장군.

전이갑  막 바로 공격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전의갑  그러하옵니다. 저 들이 미쳐 군을 정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치는 것

이 좋을 것이옵니다.

배현경  우리 군은 주변의 호적들이 많이 참여한 연합군이올시다. 작전을 하

달하고 군의 통제가 이루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 하오이다. 당장

공격은 무리올시다.

윤신달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옵니다. 우리의 주목적은 백제의 위협을 주

어 더 이상의 남진을 막는 것이옵니다.

배현경  그렇소이다. 이곳으로 오면서 그러한 영을 받았소이다. 좀더 지켜보

면서 동태를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그나저나 벽진군으로 간 군대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소이다. 듣자하니 백제군이 크게 당했다고도

하던데...

윤신달  일단 홍유 장군과 김락 장군이 그리로 가고 있으니 곧 뭔가 소식이

오겠지요.

 

씬 또 다른 길

 

        홍유와 김락이 가고있다. 이들도 많은 군사를 이끌고 가고있다.

 

홍휴    아무래도 이제부터 백제와 전면전이 시작 된 것 같소이다.

김락    그러게 말입니다. 신라를 돕기 위해서 우리 군사가 일만이나 대야성

으로 가고있다고 하오이다. 참으로 생각도 못했던 일이 아닙니까?

이거야말로 명실공히 우리 고려와 신라국이 동맹국이 되었다는 걸  

뜻 하는게 아닙니까?

홍유    허허허.. 그렇게 되었지요. 결국 그렇게 되면 이제 백제가 삼한 중에

제일 외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신라가 우리와 동맹을 맺었다는 것

은 아주 중요합니다. 삼한 통일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

됩니다. 아니 그렇소이까? 김장군?

김락    왜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헌데, 홍장군. 우리가 벽진군까지 가도

별 소용이 없는 것 아니옵니까? 듣자하니 이미 백제군이 크게 패했

다고 하던데요?

홍유    그래도 일단 지원군으로 출발을 했으니 가 보아야지요. 몇 십리만

더 가면 벽진군 성이 아닙니까?

김락    그렇습니다 장군.(그들 그렇게 가다가 앞 쪽에서 오고 있는 전령마

들을 본다) 아니 전령이 아닙니까?

홍유    그런것 같소이다. 기를 보니 우리 전령이 아니라 벽진군 군사 같소

이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두 필의 전령마가 달려와 그들 앞에 멎는다.  .

그 전령들은 다가와 말에서 내려 군례를 드리고 말한다.

        

전령    벽진군 성에서 오는 전령이옵니다.

김락    벽진군에서 웬 전령인가?

전령    저희 성주님께오서는 두 분 장군께 말씀 드리라 하셨사옵니다. 이미

우리 군사가 백제군을 크게 제압하였으니 수고롭게 오실 필요가 없

다고 하셨사옵니다.

김락    수고롭게 올 필요가 없다....? 아니 이미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홍유    허허허, 지원군이 필요 없다는 뜻 같소이다.

전령    그러하옵니다.

홍유    그래도 그렇 , 우리는 먼길을 왔네. 기왕에 가까이 이르렀으니 성

주님과 인사라도 하고 가고 싶다고 전해주게 알겠는가?

전령    알겠사옵니다.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하오면 천천히 오시오소서.

홍유    알겠네. 그럼 어서 가보게.

전령    예, 장군.

 

        전령이 군례를 드리고 다시 돌아간다. 홍유와 김락이 보며 웃는다.

 

김락    결국 우리 생각대로 된 것 같사옵니다. 벽진군은 역시 스스로의 힘

으로 백제군을 물리친 것 같소이다. 이제 우리는 그야말로 바람 쏘

이러 온 것 밖에는 아니되었소이다 그려.

홍유    그러게 말이올시다. 하하하. 역시 우리 폐하께오서는 복이 많으십니

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벽진군이 우리 폐하께 왔고 또 백제군

을 크게 무찔렀소이다. 이게 다 폐하의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소이

까?

김락    암요. 하하하하 아무튼 이렇게 해서 벽진군도 한 시름을 놓게 된 것

같습니다.

 

씬 송도 황궁

 

씬 동 대전

 

        왕건과 왕유, 최응이 함께 있다. 왕건이 올라온 장계들을 살펴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왕건    백제군의 남진이 멈추었다는구료.

왕유    폐하의 군대가 대야성으로 발빠르게 갔사옵니다. 어찌 함부로 더 움

직일 수가 있겠사옵니까?

최응    그러하옵니다. 당분간 백제와의 전선은 그렇게 거기서 멈출 것이옵

니다. 벽진군도 그러하옵구요.

왕건    모두가 자네 이야기대로 되었네. 결국 우리는 싸움을 하지 않고 우

리가 생각한 대로 가고 있어.

최응    어차피 신라는 우리 고려에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사옵니다. 우리가

동맹을 맺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상대 할 적국 하나가 줄었다

는 것이 되옵니다.

왕건    그건 그렇겠지.

최응    나아가 생각하기에 따라선 싸우지 않고 이미 신라를 우리 영토로

만들었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사옵니다.

왕유    최시랑의 말이 합당하옵니다. 신라는 이미 어느 쪽엔가 기대지 않으

면 안돼는 나라이옵니다. 헌데, 백제가 아닌 우리를 택하였사옵니다.

왕건    그럴수록 더 조심하오. 만사를 더 다져야 할 것이오. 우리가 거만

하고 스스로 만족한다면 일을 그르칠 수가 있습니다. 이럴수록 더

신라를 따뜻하게 대하고 인정 적으로 해야 만이 진실로 우리가 원

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왕유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왕건    지난 날 신라는 스스로의 힘으로 삼한을 통일하지 못하고 당나라라

는 외세의 힘을 빌렸소이다. 결국 그 뿌리가 오늘까지 이어져 스스

로 서는데 힘이 겨웠던 것이오. 어떤 일이 있어도 외세의 힘이 들어

와 우리 삼한을 통일하는데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올시다.

최응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반드시 그리 되어야 하옵니다. 그 옛날 신라

는 당나라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 고구려가 가지고 있던 그 넓은 영

토를 거의 찾지 못하였사옵니다. 크게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옵니

다.

왕건    암..암 그렇구 말구. 이제부터는 싸움도 싸움이지만 다분히 정략적인

여러 가지 사안들이 필요할 것이야. 대 백제 전에 있어서 말일세.

그 점을 최시랑은 순군부의 태평낭중과 계속해 긴밀히 협의해 주게

나.

최응    예, 폐하.

왕유    폐하 곁에는 최시랑이 있고 또 조당에 나가면 태평낭중이 있사옵니

다. 이들 모두 폐하께는 참으로 보배 같은 사람들이옵니다.

왕건    왜 아니겠소이까? 하하하하 그러기에 나는 늘 단잠을 잘 수가 있소

이다. 이렇게 명철한 책사들이 있고 또 범 같은 용맹한 장수들이 많

소이다. 우리 고려는 이제부터올시다. 이제부터예요.

        

씬 동 황궁 조당

 

        태평과 김행선을 비롯해서 많은 문무 신료들이 함께 해 있다. 박지

윤 부자, 오다련, 유긍달, 그리고 신숭겸과 박술희, 복지겸이 함께

있다. 다과를 들며 환담중이다.

 

김행선  대야성에서는 본격적으로 우리 고려군과 백제군이 대치하기 시작했

다고 합니다. 서로가 대병이 마주보고 있는 것 이예요.

박지윤  그렇습니다. 서로가 일만이 넘는 대군들이올시다.

오다련  견훤왕이 남쪽으로 가던 군대를 돌렸다고 합니다. 만약 전투가 벌어

진다면 엄청나게 큰 전쟁이 될 것이올시다.

태평    전쟁은 없을 것이옵니다. 말씀 드렸듯이 처음부터 전쟁을 하려고 간

것이 아니라 백제의 남진을 멈추고자 간 것이옵니다.

박수문  벽진군도 스스로 백제군을 물리쳤다 들었사옵니다.

복지겸  그렇다고 합니다. 또한 스스로 폐하의 친서를 뫼시고 나서 거듭 충

성을 맹세하고 있다고 합니다. 벽진군이 참으로 중요한 전략지라는

점에서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숭겸  그렇소이다. 벽진군의 일은 덕으로 다스리는 힘이 무력을 이길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보여 준 것이옵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사옵

니다.  

박술희  앞으로는 전략을 세울 때 적지 않이 고민이 많겠소이다, 태평낭중.

이제부터 신라는 우리의 적이 아니니 어떻게 전선을 유지해야 하는

가 생각할 것이 많지 않겠소이까?

태평    그렇습니다. 문제는 백제가 되겠지요. 신라 땅을 빼앗으면서 한 편

으론 우리를 견제하려고 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선 백제는 그만큼

자유스럽고 우리 고려는 불편할 수도 있사옵니다. 신라를 등에 업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지요.

유긍달  신라를 업고 다닌다? 하하하하. 거 그럴듯한 말이구료. 태평낭중.

태평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 한 것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삼한 통일의

전면전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하옵니다. 다분히 크게 경계해야 할 것

이옵니다.

 

        모두들 끄덕인다. 이야기들이 대충 끝난 듯, 김행선이 헛기침을 하

며 말한다.

 

김행선  이거 날이 아주 더워지고 있소이다. 갑자기 여름이 오는 것 같애요.

유긍달  그러게 말이옵니다. 시중어른.

김행선  자, 오늘 정무는 이쯤에서 끝내십시다.

오다련  그러시지요.

        

        그들 모두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들 모두 밖으로 나간다.

 

씬 동 조당 밖 길

 

        신료들이 무리 지어 앞 뒤로 나오고 있다. 그 와중에서 앞서가던 오

다련이 박술희를 보며 말한다.

 

오다련  아참, 박장군.

박술희  예, 대부어른.

오다련  아직 해가 한참 남았소이다. 듣자하니 박장군의 그 후원 정자가 아

주 일품이라 들었소이다. 술 마시기 좋다면서요?           

박술희  허허.. 그렇사옵니까? 왜요? 한잔 생각이 나시옵니까?

오다련  이따가 관복을 갈아입고 좀 가볼까 합니다. 술 한잔 주시구려.

박술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오시오소서. 하하하.

 

        그들 그렇게 사라진다. 보고있던 유긍달이 불쾌한 헛기침을 토한다.

박지윤과 김행선이 그런 유긍달을 본다.

 

김행선  허허허. 저분들이 저녁 술을 약속하는 모양이올시다.

박지윤  허허허. 그런 것 같사옵니다. 시중어른. 우리도 가다가 시원한 탁주

한 잔 어떻겠사옵니까? 유대부도 함께 가시지요.    

유긍달  저 사람들은 따로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저러는 것입니다.

박지윤  할 이야기가요?

유긍달  예, 지난날 폐하께서 평양에 가셨을 때도 저 사람들은 서로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오이다.

김행선  무슨 이야기를 말입니까?

유긍달  아직도 들 모르십니까?

김행선  모르다니요?

유긍달  태자마마를 원윤(다음 황제가 될 황태자의 벼슬이름)에 봉하는 일을

가지고 의논들 한다 합니다.

박지윤  오.. 그렇소이까? 하긴 그럴 때도 되었지요.

유긍달  되다니요? 아직 폐하의 보령이 한참이시고, 태자 분들은 춘추가 너

무 어리시옵니다. 원윤에 관한 이야기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김행선  글쎄올시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도 같고, 또 유대

부 이야기를 들어보니 좀 이른 것도 같고. 허허허... 이 늙은이는 종

잡을 수가 없소이다. 된 것도 같고.... 이른 것도 같고......

유긍달  분명히 너무 이릅니다.

박지윤  하긴 뭐..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예..

 

씬 황궁 밖 길

 

        신숭겸과 박술희가 태평과 함께 가고 있다.

 

신숭겸  오대부께서 자네에게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은 눈치던데.

박술희  예, 그렇습니다 형님. 사실은 지난번에도 이야기가 있었던 일이지요.

신숭겸  무슨 일인데 그러는가?  

박술희  태자마마에 관한 일입니다.

태평    태자마마라니요? 왜요?

박술희  지금 나주부인 마마께서 나으신 태자마마는 올해로 춘추가 9살이

되십니다. 그리고 폐하의 보령이 40을 훌쩍 넘기셨소이다. 이 전국

시대에 황실을 보존하고 국가를 안심케 하는 일은 다음 보위를 정

해놓는 일이올시다. 오대부께선 그걸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나주부인 마마께서도 무척 초조해 하시는 모양이옵니다.   

신숭겸  하긴 그러고 보니 그럴 때도 됐네 그려.

박술희  우리에게는 형수님이십니다. 마땅히 말씀드릴 때가 되었습니다.

태평    충분히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 합니다. 하지만 사안이 아주 민감한

이야기일 것이옵니다.

박술희  민감하다니요? 왜요?

태평    충주부인 마마께오서도 이미 태자마마를 생산 하셨사옵니다. 건국

초에는 후사를 정할 때 참으로 신중해야 하는 것이옵니다.

박술희  신중해야한다..? 아니, 지금의 태자마마께서 그만큼 안심이 아니 된

다 그런 말씀이신 것 같구료?   

태평    수많은 피와 땀으로 이룩한 제국이옵니다. 또한 삼한을 통일해야하

는 대 과제가 앞에 놓여 있사옵니다. 어느 분이 다음 보위를 이으시

던 간에 그에 합당하신 분이 되셔야 한다는 뜻이옵니다.

신숭겸  듣고 보니 옳은 말씀이긴하오. 그러나 옥좌에 앉으시는 분은 어차피

태자마마들 속에서 선택되는 것이고 또 그 중에서도 가급적 장자가

우선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올시다. 또한 국가의 장래를

위해 지금쯤 마땅히 논의가 되어야 하구요.

태평    소생의 이야기는 그러나 결코 서둘러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것이옵

니다.  훗날 누가 더 걸출한 주인의 자질이 있느냐는 꼭 한 번 따져

보아야 할 일입니다.

박술희  자고 나면 전쟁이 계속 되는 시국이올시다. 그렇게 긴 여유가 없소

이다.

태평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아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마는 신중을 기

하자는 것일 뿐입니다.

박술희  허허허, 이렇게 원.....태자마마는 뻔하십니다. 뭘 신중을 기할게  있

다는 말씀입니까? 어쨋든 이 일을 공론화 시킬 것이니 태평 낭중도

깊이 한 번 생각해주시구료.

태평    예....알겠습니다. (그러나 표정이 밝지 않다.) 허허허. 소생은 그럼

이만 황궁으로 가 보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폐하께 아뢸 사안들이

많아서      

신숭겸  오.. 그렇소이까? 그럼 가보시구려.

태평    예, 그럼.

박술희  허면 태평 낭중, 기왕에 폐하를 뵙는다 하시니 아예 원윤에 관한 이

야기를 말씀 드려 보시구려.

태평    예, 장군. 일단 운은 띄워 보겠습니다. 허면....

 

        태평이 그렇게 그들 앞에 목례를 하고 길을 갈라선다. 박술희가 보

다가 어깨를 으쓱 한다.

박술희  가십시다 형님.

 

        그들도 그렇게 가면서.....

 

씬 황궁 오씨전

 

        오씨가 박상궁과 함께 마주해 있다.

 

오씨    아버님께서 박술희 장군을 만나러 가시었네. 우리 태자가 원윤이 되

시는 일로 가신 게야.

박상궁  마땅히 그럴 때가 되지 않았사옵니까?

오씨    박술희 장군뿐만 아니라 아직 황도에 머물러 있는 신숭겸 장군도

보신다 하시었네.

박상궁  그렇사옵니까? 신장군은 일등공신 중에 한 분이 아니시옵니까?

오씨    왜 아니겠는가? 나는 그 사람들에게 참으로 잘 해주었네. 의 형제분

들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시동생들이기도 하지.

박상궁  물론 그렇사옵니다 마마.

오씨    생각해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스럽기도 하네. 의당 우리 태자가

원윤이 되어야 하는 것은 기정 사실인데, 왜 이렇게 초조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 그런가?

박상궁  왜 아니겠사옵니까? 생각할 수록 충주부인 마마께오서 잘못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그 분께서 오히려 앞서서 마마의 불편하신 심기를

헤아려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오씨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왜 이렇게 답답해하겠는가? 허나 이것도 잠

시 뿐일 것일세. 세월이 가면 다 알게 되겠지. 더러는 무서운 것도

알게 될 것이고 말일세. 호호호호

 

씬 수인의 처소

 

        아버지와 딸이 함께 해있다. 유긍달은 표정이 매우 굳어져 있다.

 

수인    아니 아버님? 아버님이 보시는 면전에서 오대부님이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 사람들 많은 데서 노골적으로 함께 들 몰려갔다는 말

입니까?

유긍달  그랬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저들이 저러는 것은 원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하고 말이옵니다.

수인    그러니까 뭐라고들 하옵니까?

유긍달  답답한 것은 원로들 중 누구하나 시원한 말을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벌써 원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하고

말을 했지요. 허지만 썩들 그렇게 내 편에서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

는 것 같았어요.

수인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나주 형님께서 낳으신 태자 무는 이제 아

홉 살입니다. 그리고 우리 태자 태는 세살 이십니다. 뭐가 그렇게

다르고 또 뭐가 그렇게 급해서 서두른단 말입니까? 어차피 나주 형

님께서도 황후가 아니시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나 그 형님이나 똑

같은 형편이라 그런 말입니다. 왜 무가 원윤이 되어야 하옵니까?

유긍달  나도 그것이 답답해서 광평성의 원로들에게 말을 했던 것이지요. 아

직은 너무 이르다 서둘러선 아니 된다 하고 말이지요.

수인    더 바짝 조이셔야 하옵니다 아버님. 이대로 물렁하게 보여서는 아니

되옵니다. 우리 태자 태가 비록 아직 많이 어리지만, 결코 나주형님

의 무에게 뒤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쪽도 고작 아홉 살이 아닙니까?

어리기는 매 일반입니다. 아버님께서도 좀 서두세요. 더군다나 의

형제 분들이 오대부 님의 편을 들면 일은 정말 어려워지옵니다.

유긍달  알겠사옵니다. 마마. 마마께서도 폐하를 좀 설득해 보시오소서. 그래

도 폐하께서는 마마를 많이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수인    알겠사옵니다. 때를 보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런 수인의 표정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

 

씬 박술희 집 외경(밤)

 

씬 동 집 후원 정자

 

        오다련과 신숭겸 박술희가 모여서 술상을 마주하고 있다.

 

박술희  따지고 보면 폐하께서 오늘에 이르시도록 나주의 공은 아주 컸사옵

니다. 그것은 사실 바꾸어 말해서 여기계시는 오 대부 어른과 형수

님이신 나주 부인 마마의 헌신적인 도움이 컸던 것이옵니다.

오다련  그렇게 말씀하여 주시니 참으로 고맙소이다. 신 장군께서도 여기 박

장군과 같은 생각을 해주시니 이 사람은 오늘 참으로 마음이 훈훈

합니다.

신숭겸  별 말씀을....폐하의 보령이 마흔 하고도 넷이시옵니다. 마땅히 원윤

의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어른.

오다련  예, 말씀하시지요.

신숭겸  태평 낭중이 우리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참으로 신중해

야 한다구요. 절차나 시기에 있어서 결코 이번 원윤에 관한 이야기

가 잘못 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황제가 되실 분은 역시 여러 가지

로 그만큼 황실을 이끌 수 있는 분이어야 하옵니다.

오다련  무슨 말씀 이신지...

신숭겸  이번 일로 하여 황실에 잡음이 없어야 할 것이옵니다. 충주 부인 마

마께오서도 저희들의 형수님이시옵니다.

박술희  아니 형님. 허지만 그 태자님은 고작 세살 이시옵니다. 논의를 할

입장이 아니 되옵니다.

신숭겸  그러나 그 쪽에서는 그리 생각을 아니하실 것일세. 어차피 황후 마

마께오서 적자가 없으신 것은 사실일세. 그리고 두 분 모두 같은 부

인의 반열에 계시네. 생각하기 따라선 그 분들의 아드님도 원윤에

생각을 아니가질 수 없다 ..그런 뜻이야.

오다련  (펄쩍뛰며) 말도 아니 되오이다. 부인의 반열도 아래 반열이올시다.

또한 우리 태자마마와 비교하여도 엄청난 나이 차가 나는 갓난아기

옵니다. 어떻게 그런 비교를 할 수 있습니까?

신숭겸  그렇다는 뜻입니다. 황실은 편안해야 하옵니다. 이런 일로 절대 시

끄러워서는 아니 되옵니다. 미리 그런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전해 드리는 것뿐이옵니다. 그런 일들은 역시 대부 어른과 나주 형

수님께서도 그만큼 너그러운 마음으로 매사를 운영하셔야 한다 그

런 뜻이옵니다. 이건 부탁이옵니다. 대부 어른.

오다련  뭐.....무얼 걱정하는 지는 알 것 같소이다. 하긴 뭐 마땅히 그래야지

요. 저 사람들이 조용하게 있다면 왜 우리가 시끄럽게 하겠소이까?

다 같은 폐하의 아드님들인데 말입니다.

박술희  하하하. 그만 한 잔 하시지요. 경우로 보더라도 원윤을 정하는 것은

나주 부인 마마의 태자님이 우선 이옵니다. 그건 다들 옳은 말이라

고 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태평 낭중이 아마도 원윤에 관한 이야기

를 지금쯤 꺼내고 있을 것이옵니다. 다음은 우리가 적극 밀 것이옵

니다. 기다려 보시오소서.

오다련  아이구...고맙소이다. 박 장군. 이 은혜를 이 늙은이가 어찌 잊겠소이

까? 잘 좀 도와주시구려. 신 장군도 좀 도와주시구려.

신숭겸  나라 일 이옵니다. 어찌 게을리 하겠사옵니까? 드시지요 허허허.

 

씬 황궁 대전

 

        왕건과 태평 최응이 함께 해있다. 왕건이 보던 서류들을 접는다.

 

왕건    (끄덕이며) 벽진군도 그렇고 대야성도 그래. 어쨌든 우리의 군사들

이 백제군과 대치했다는 것은 사실상에 전쟁을 의미하는 것일세. 결

코 저들에게 여유를 주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태평    물론 그렇게 단단히 일러 놓았사옵니다. 그러나 저들이 먼저 공격하

지 않는 이상 우리측에서 공격 할 필요는 없다고 군령을 내려놓았

사옵니다.

최응    그러하옵니다 폐하. 지금은 그저 관망 할 때인 것 같사옵니다. 그러

나 이럴 때일수록 전 전선을 점검해서 어디가 취약지구 인지를 살

펴 미리 대책을 연구해야 하옵니다. 백제도 이미 우리가 싸움을 하

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서로가 견제를 하면서 또 다시 다

른 지역을 노릴 것이옵니다.

왕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야. 전선은 넓고 할 일은 너무 많아. 순

군부에서는 병부는 물론이고 내군의 복지겸 장군과도 잘 의논을 하

도록 하게. 전쟁에 있어서 첩보력이란 아주 중요한 것일세. 많은 정

보를 복지겸 장군은 알고 있네.

태평    예, 폐하.

왕건    아무튼 잠시 또 이렇게 서로가 마주하고 공백기간이 한 동안 가겠

네 그려.

태평    그럴 것이옵니다. 폐하. (눈치를 보다가) 하옵고..폐하.

왕건    음...얘기해 보게. 왜 그러는가?

태평    오늘 조당에서 회의를 끝내고 나오다가 박술희 장군과 잠시 이야기

가 있었사옵니다.

왕건    무슨 이야기?

태평    박 장군 뿐만 아니라 신숭겸 장군께서도 그러하였고 또.... 일부 원

로 분들 이야기는 이제 두 분 태자마마 중에서 누군가 한 분을 원

윤으로 정하셔야 한다고들 하셨사옵니다.

왕건    원윤이라니?

최응    ...........?

왕건    원윤을 정한다? 이제 아홉 살하고도 세 살 짜리 아이들일세.

최응    하오나 폐하. 폐하의 보령이 이미 원만하시옵니다. 지금쯤 다음 후

사를 정하시는 것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 당연한 일이라 사료되옵니

다.

왕건    허허 이 사람들아. 내 나이 이제 마흔 넷이야. 뭐가 그리 급해서 다

음 보위를 벌써 논한단 말인가?

최응    황실의 일은 일찍부터 마련하고 준비하여야 하는 것이옵니다. 백년

의 일을 오늘 준비하는 것이 황실의 법도이옵니다.

왕건    어차피 내 자식이 둘이나 있어. 만에 하나 내가 잘못되어 어찌 된다

하여도 그 아들 중에서 누구 하나가 이 자리에 앉을 것이 아닌가?

아직은 너무 이르네. 아니 그런가? 태평 낭중?

태평    폐하. 하오나 여기 최 시랑과 장군들의 의견이 분명 일리는 있사옵

니다. 폐하께서 계실 때에 후사를 정해 놓으시는 것은 그만큼 다음

세대를 든든히 해 놓는 것이옵니다. 하지만 서둘러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만큼 어렵게 이루어 놓으신 제국이옵니다. 다음 폐

하께오서도 역시 폐하만큼 제국을 다스릴 수 있는 걸출한 역량이

요구되옵니다.

왕건    옳커니! 옳은 말일세! 수많은 피와 죽음을 딛고 일어난 제국일세.

백성들의 엄청난 희생과 고통으로써 이루어진 제국이야. 황제의 자

리란 때로는 그 많은 피와 죽음과 희생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게 할 수도 있는 자리일세.

최응    태자마마들 모두 폐하의 혈육이시옵니다. 영명 하신 그 내력이 어디

로 가겠사옵니까?  

왕건    자식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일세. 전대미문의 끝없는 대 제국을

일으켰던 진시황제도 그 제국의 역사가 무려 몇 십 년을 가지 못했

네. 바로 다음 대에 다 무너졌어.         

두사람  .......

왕건    아무튼 지금은 전선 상황이 너무도 예민하이. 대야성도 그렇고 벽진

군의 전투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닐세. 그 결과를 좀 보고 나서 해

도 이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야.

두사람  예, 폐하.

 

씬 대야성 외경(낮)

 

씬 동 성안 견훤의 처소

 

        각 지역에 내려가 있던 여러 장수들이 다 돌아와 있다. 견훤이 회의

를 주재한다.

 

견훤    모두 수고들 하였어. 참으로 우리 백제군이 오랫만에 기염을 토한

대단한 전투였어. 참으로 고생들 많았어.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아니, 이제는 이런 날이 계속 되어야지. 우리

백제의 날이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런 이야기야. 이 얼마나 감회가 깊

은가 말이야. 우리는 지금 대야성에서 조회를 열고 있어. 아니 그런

가?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어디 대야성 뿐이옵니까? 이미 구사와 진례군까지 진격해

가있사옵니다. 그 모두가 폐하의 영토가 되었사옵니다. 그리고 서라

벌이 지척이옵니다.

견훤    하지만 고려군이 다시금 우리 성밖에 와있어. 그것도 아주 대병이라

고 들었어.

신덕    그 때문에 진격 중이던 우리 군대가 경계병만 남기고 다 돌아와 마

주해 있사옵니다. 고려군을 더 이상 염려하시지 않으셔도 될 것이옵

니다.

애술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 기회에 고려군과 한 번 대적해 보는 것도 나

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최필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이제 신라군은 잠시 놓아두고 고려를 공략

함이 어떻겠사옵니까?

김총    그러하옵니다. 고려군을 치도록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모두들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하하하하. 물론 그렇지. 저런 고려 따위가 어떻게 우리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공직    하오나 폐하. 고려군은 아직 싸움이 없어 기운들이 넘치는 군대이옵

니다. 저희는 많은 전투를 하여 지치고 피곤하옵니다. 지금 당장 또

대규모 전투를 벌리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옵니다.

지훤    공직장군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조심하는 지혜도 필

요하옵니다.

최승우  두 장군의 말씀이 잠으로 귀담아 들을 만 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지금은 잠시 숨을 돌리고 다음을 정비해야 할 시기이옵니다. 무리하

다가 일을 그르치는 수가 있사옵니다 폐하.

견훤    하하하하.. 실은 나도 알고 있네. 우리 군사들은 사실 지쳤어. 지금

은 휴식이 필요한 때야. 비록 고려가 신라와 동맹을 맺어서 지원군

으로 와 있다고 하지만 저들 또한 무리해서 싸우려고 하는 것이 아

니야. 이제 우리도 서서히 황도로 돌아가야지. 다음을 생각해야 한

단 말이야.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이제 황도로 가셔서 다시 대업을 구상하셔야 하옵니

다.

견훤    그래. 돌아가야지. 가기는 가야겠는데.. 그 벽진군 말이야. 아직도 끝

이 안 났어.   

모두들  .........

견훤    (슬슬 열이 받아서) 도대체 우리 태자 신검이는 뭘 어떻게 하고 있

는 것인가 말이야! 다시 보고가 올라온 것이 있는가?

최승우  폐하. 이미 그 쪽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하옵

니다. 한 번 실패는 병가상사라 했사옵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오소

서 폐하.

견훤    상심? 상심이라고 했나? 파진찬? 상심이 아니야. 울화가 터져서 그

래! 이거야말로 우리 백제의 얼굴에 먹칠을 한 사건이야! 생각해봐

그 조그만 시골 성주에게 그렇게 당할 수가 있는가 말이야. 당해도

어떻게 그렇게 당하는가 이 말이야! (사이) 이찬은 물론이고 내 아

우 능애도 가있고 거기다 내 사위 박영규 장군도 가있어! 이건 아주

우리 황실 사람들이 몰려가서 집단으로 대 망신살을 끼치고 있어!

그 군을 이끈 것은 태자 신검이야!

최승우  하오나 폐하. 그만 노여움을 푸시오소서. 다음엔 잘 할 것이옵니다.  

견훤    다음엔 다음엔.... 맨날 다음이야?! 아니야.. 이렇게 하다가는 아니 되

겠어. 우리 신검이가 배운 것이라고는 실패하는 것밖에 몰라. 공격

을 하라고 해. 그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근성이야. 자꾸 싸안

을 것이 아니라 독기와 근성을 가르칠 필요가 있어.

최승우  하..하오나 폐하. 지금은 형편이 어렵사옵니다.   

견훤    그럴수록 근성과 독기가 필요한 것이지. 전령을 보내게. 성을 반드

시 함락하라고 해. 안 돼면 거기서 죽으라고 해! 나는 그 결과를 보

고 받고 돌아가도 돌아갈 것이야. 여기서 계속 지켜보고 있을 것이

니까. 빨리 결과를 알려 달라고 하게.

최승우  폐하....?

견훤    그렇게 해!!!

 

        아무도 대꾸를 하지 못한다. 견훤은 그 만큼 화가나 있는 것이다.

 

씬 벽진군 성 신검의 군영

 

        신검이 울상으로 앉아있다. 한 숨을 쉬는 그의 표정은 완전히 의욕

상실이다. 그 앞에 신검이 읽고 있던 견훤의 장계가 놓여 있다. 계

속 그 글을 보며 한 숨을 쉰다. 보고있던 이찬과 능애 박영규가 묻

는다.

 

박영규  뭐라고 쓰셨사옵니까?

신검    어떤 일이 있어도 저 성을 공격하라고 하옵니다.

박영규  이미 우리는 첫 번 싸움에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사옵니다. 다시 싸

우는 것은 무리이옵니다.

신검    허나 어쩌겠습니까? 아버님께서 이렇게 펄펄뛰고 계시니 말이옵니

다.

능환    이번 실수는 태자마마의 실수가 아니라 이 늙은이의 실수이옵니다.

허나 우리의 지금 군사로 벽진군 성을 공격하는 것은 무리이옵니다.

퇴각을 해야 하옵니다.

능애    그렇습니다. 이미 결론이 난 일이옵니다. 군사들의 사기도 엉망이고

어제 밤에 도망친 군사만 해도 백 여명이 넘는다 하옵니다.

신검    그러니 어찌합니까? 아버님께서 이렇게 전령을 보내 다그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황명입니다. 거역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공

격하라면 하는 수 밖에요.

 

        신검은 더 이상 말이 없다. 제장 들도 말이 없다. 어두운 그들의 분

위기에서 디졸브되면...

 

씬 동 군영 길

 

        능환과 능애 박영규가 함께 오고 있다.

 

능애    폐하께서 화는 나시겠지만 무리한 공격을 재촉하시는 것은 아니 될

말입니다. 뻔한 결과를 알면서 어찌 공격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능환    폐하께서는 맏이 이신 신검 태자마마를 너무 혹독하게 다루시는 것

같습니다. 위험수위까지 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금 태자마마는

폐하의 이야기만 나오면 안절부절못하십니다. 아니 될 말입니다.

박영규  폐하께서는 그만큼 다음 보위를 이으실 분을 강하게 단련시키려는

것이옵니다.

능환    너무 심하다는 이야기올시다. 이렇게 되면 부자 분의 갈등이 다시

재현 될 수가 있습니다. 무서운 일이올시다.

두사람  .........

능환    우리가 처음부터 벽진군을 너무 우습게 보았어요. 저렇게 지독한 시

골 성이 있는 줄은 몰랐소이다. 성이 아니라 성주겠지만 말이외다.

 

씬 벽진군 성 외경

 

씬 동 성안

 

        이총언과 그의 아들 영, 그리고 김락과 홍유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이총언  우리가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하였는데도 이렇게들 오시니 괜히 고생들만 하시는 것 같소이다.

홍유    어인말씀이십니까? 장군. 비록 우리 지원군이 소용없다 하더라도 저희 같은 장수들이 와서 인사를 드림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장군께서는 이미 황제폐하께서 본읍의 장군으로 봉하시면서 식읍을 하사하시고 시중에 준하는 벼슬로써 예우하셨습니다.

이총언  허허허. 고맙소이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들 그러십니다.

김락    어찌 대단하지 않겠사옵니까? 몇 배나 되는 백제군을 참패시킨 대 사건이옵니다.

이총언  사람이 하는 일은 마음에 있는 것이올시다. 하고자해서 아니 될 일이 무엇이겠소이까? 자, 전시중이라 술은 못하겠고 요기나 하고 돌아 가셔야 겠소이다. 그리고 이번 전쟁이 끝나면 내 아들 영을 황도로 보내겠소이다. 폐하께서 잘 거두어 주십사고 전해 주시구려.

      부탁 올리겠습니다 장군.

홍유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아무튼 대단하시옵니다. 참으로 대단하시옵니다.

김락    이야기 들었사옵니다. 지금 성밖에서는 백제 견훤 왕의 태자가 돌아가지도 못하고 공격도 못하고 딱하게 되었다고 들었사옵니다.

이총언  하하하. 그렇겠지요. 허나 저들은 한번 더 올 겝니다. 돌아가려면 벌서 돌아갔지요. 공격을 할 의사가 있으니까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올시다. 하지만 뜻대로 아니 될 것이올시다. 하하하하..

 

씬 대야성 장대 근처

 

        견훤이 뒷짐을 지고 서서 먼 들판을 보고있다. 최승우가 눈치를 보

다 말한다.

 

최승우  폐하. 황도로 돌아갈 준비들이 끝났다 하옵니다.

견훤    ..........(대답이 없다)

최승우  벽진군의 일은 그쯤 하시오소서. 불가능한 일을 강제로 밀어 부치면

기필코 좋지 않은 일이 생기옵니다.

견훤    전령은 보냈는가?

최승우  예. 워낙에 폐하께서 강경하신 지라 보내기는 보냈사오나 그쯤 하시

오소서 폐하.

견훤    우리 어린 금강이도 화살에 비오듯 쏟아지는 적진 속으로 들어가

용감히 싸웠어. 그리고 성문을 열었어. 제 놈이 맏이가 아닌가 말이

야.

최승우  잘 알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만 용서하시오소서. 그리고 황도로 돌

아 가시오소서. 너무 오래 비워두었사옵니다.

견훤    안돼! 그럴 수는 없어. 이번 일만은 내가 뿌리를 좀 뽑고 싶어. 확실

하게 무엇이 독기이고 근성인가를 가르치고 싶단 말이야. 기회가 더

는 없어. 이번에 확실히 가르쳐 놓아야해! 그대까지 좀더 기다려 보

세. 죽었다가 살지 않고는 절대로 전장터에서 군사들을 지휘할 수가

없는 것일세. 나는 그 아이가 호랑이 새끼이기를 바래. 눈치만 보는

삵쾡이가 아니라 호랑이 말일세! 표호하는 호랑이 말이야!

최승우  폐하...........?

견훤    전령은 보냈다고 하였겠다?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거기 내가 알아들을 만큼 썼어. 다들 알아들을 게야.

최승우  ............

 

씬 길

 

        견훤의 전령이 그렇게 달려가고 있다. 멀리 사라지면.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안

 

        박씨가 놀라서 민합과 공달을 보고있다.

 

밧씨    무어라고요? 우리 신검이가 지금 그토록 궁지에 몰려 있단 말입니

까?

민합    사정이 매우 위급하고도 또 급하다 하옵니다.

박씨    그런데요 폐하께서 지원군도 아니 보내 주시고 그냥 그렇게 싸우라

고만 한다구요?

공달    그렇다 하옵니다. 황후마마.

박씨    이렇게 기가 막힐 때가 있나. 금강이는 폐하께서 손수 싸안고 다니

시면서 왜 우리 신검이는 그렇게 미워하신 단 말인가? 이미 실패한

전투를 끝까지 싸우라는 것은 죽으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미워해도

어떻게 그렇게 미워할 수가 있단 말인가? 다 같은 폐하의 자식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으신가? 어떻게!

 

씬 벽진군 성 신검의 군영

 

        신검이 장계를 들고 견훤이 보낸 전령을 보고있다. 이미 글을 다 읽

었다. 능환과 두 장수가 보고있다.

 

신검    연이어 두 번째 도착한 전령이오. (장계보이며) 이것 보시오. 여기서

목숨을 걸라 하십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싸우라는 것입니다. 아

버님의 영이십니다.

모두들  ........

신검    (열받아 소리지른다) 성을 넘어라! 여기서 죽어라!, 벌써 몇 번째 재

촉하는 전령들이 왔습니다. 우리가 다 실패하고 여유가 없다고 하는

데도 끝내 여기서 죽으라 하십니다. 그렇지요. 차라리 죽는게 낫습

니다. 여기서 죽는게 편할 것입니다.!

                                                      (135회 끝)